글보기
[독서감상문] 산둥수용소(랭던 길키/ 새물결플러스)를 읽고
Level 8   조회수 23
2019-05-29 09:42:25

mb-file.php?path=2019%2F05%2F29%2FF664_%EC%82%B0%EB%91%A5.jpg


천천히 읽고 싶었던 책, 마지막 부분의 문장들을 아예 외워버리고 싶었던 책을 결국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깊은 여운에 비해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글로 옮기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누구인지,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도덕성과 영성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수용소 삶을 회고하면서, 나에게 깊은 도전을 주고 또 귀한 성찰을 주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교수였던 길키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면서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대학이후 자유주의적 신학의 영향으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그 후 수용소 초기에 인간의 죄성을 보면서 그 인간이 갖는 한계를 직시하게 되고, 이것은 인간이 죄인이며 그 인간을 위한 구원은 밖으로부터 혹은 위로부터 주어져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 인식은 수용소 생활이 깊어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도덕성과 영성이 인간됨의 본질임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피조물이며, 죄인이다.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엄정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구원의 문이 열리고,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시작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의 수용소 체험은 특히 물질적인 조건이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오한 질문과 답변을 던져주었다. 인간은 물질이나 기술의 발달로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영적인 성숙에 의해서 인간 개인이나 그들이 이룬 사회가 도덕적이며 인간적이며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손에 들린 것,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도덕적인 능력과 영적인 성품이 진정한 행복과 참된 인간성을 찾게 되는 것이다. 진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인간이며, 나아가 그 구원에 있어서 겸손한 인간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곧 이웃과 세상을 향한 태도임을 깨닫는 자이다. 

후반부에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적는데, 이는 수용소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종교가 갖는 힘을 보여준다. 기독교인들, 특히 천주교 사제들은 모든 수용소 사람들에게 칭찬을 얻고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을 포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헌신적이었고 이는 수용소 공동체에서 가장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에 비해 개신교인들이나 선교사들은 상대적으로 옹졸하며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져서 다른 이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종교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의 실상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 조국교회 역시 근본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태도로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정작 사회적인 소통은 되지 않고 오히려 고립되고 분리되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종교적이 될수록 위선적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기독교의 옷을 입고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수용소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율법에 갇힌 개신교인들의 전형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산둥수용소는 오늘 우리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들보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더욱 초라한 오늘 우리에게 산둥수용소의 인간기록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와 사회의 모습을 때론 반면교사로, 때로는 정면교사로 비추고 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